그것은 정확히 헤밍웨이적인 작품으로 우울하고 절망적이며 차갑고 사악한 인간적인 제목이었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국경일이란 없는 것이고, 평일에서 평일로 이어지고, 흐린 것은 흐린 채, 암울함은 암울한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 보리스 스톨가츠키, 『후기』에서
оеььнннннн6666666666666о 66 66 666666(1964)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아르카디 스톨가츠키 보리스 스톨가츠키 소설 이희원 옮김 예브게니 미그노프 삽화 아담 로버츠 해제
문학·러시아 소설 532면 정가 17,000원 사육판 변형(126*194) 하드커버 2022년 3월 17일 현대문학 발행
지적이고 상징적이며 강렬하며 신선한 소비에트 시대 SF의 랜드마크.20세기 러시아 SF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형제작가 ‘젊은 과학자를 위한 동화’. 텍스트 내외를 넘나드는 신화·과학·사회주의의 탈경계적 난동.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톨가츠키 형제의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하는 говский говский говский (19-19-19′(1964)가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길가의 피크닉 신이 되기 어렵다 죽은 산악인의 호텔에 이어 선보이는 스톨가츠키 형제 걸작선 4권에서 젊은 과학자를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에서는 러시아 민담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신화와 과학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해 사회주의 체제를 풍자하는 탈경계적 문학적 난투가 펼쳐진다.
이번 한국어판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는 특별히 예브게니 티호노비치 미그노프의 1965년도 판본 삽화를 싣고 다소 생경한 소재에 시각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었으며 2016년 골란츠 영역판 ‘아담 로버츠 해제’와 2000년 동생 보리스 스톨가츠키가 낸 회상록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해 다각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더했다.
스톨가츠키 형제의 작품세계에서 집필시기나 문학기법면에서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 언뜻 과학과는 거리가 먼 ‘마법’과 마법을 ‘과학’화하려는 이들의 결합 형태를 통해 전무후무한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의 유쾌한 일련의 모험이라는 틀 속에서 소설은 크게 세 개의 난리로 구성된다.
첫 번째 이야기 소파 난리 파동에서 레닌그라두 출신 프로그래머 사셔(알렉상드르 이바노비치 프리발로프)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북부 도시 솔로별로 향하던 중 우연히 히치하이커 2명과 동행하게 된다.
사샤의 직업을 알게 된 이들은 기묘할 정도의 열의로 그를 자신들의 직장에 스카우트하려는 한편 차에 태워준 것에 대한 보수로 솔로별로 머무는 동안 묵을 숙소를 소개하고 있다.
전래 동화 속 마귀파 같은 노파가 기거하는 의아한 닭다리집에서 사샤는 사라진 소파를 둘러싼 대소동에 휘말리며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을 겪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난리법석 속 난리법석’은 ‘소파를 둘러싼 난리법석’으로 이직을 결심한 사샤가 문제의 직장 ‘요술과 마술과학연구소’에 입사한 뒤 처음으로 당직을 맡게 된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을 다루고 있다.
밖에서는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실제로 12층 이상의 연구소를 돌며 그는 각 부서의 여러 문제와 연쇄적으로 직면했고 결국 연구소 전체에 살아있는 영혼은 하나도 안 된다는 당의 지침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세 번째 이야기 ‘온갖 난리법석’에서 사샤는 순간적으로 지원해 자전거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같기도 한 형태의 타임머신을 타고 소설 속 ‘묘사된 미래’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매일 나타나 죽음의 녹색 앵무새들에게 깜짝 놀라 친구들과 함께 두 몸이 한 육체로 공존하는, ‘요술과 마술과학연구소’ 연구소장 야누스의 거대한 비밀을 파헤친다.
소원을 들어주는 물총새, 전 세계의 이야기를 알지만 무엇 하나 절반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화증에 걸린 고양이,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비이(슬라브 전설에서 시선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지하세계 괴물), 우파니샤드를 낭송하는 벽경, 읽을 때마다 다른 도서로 변신하는 책, 지불했다가 호주머니로 귀환하는 동전 작가들의 탁월한 창작력을 바탕으로 한계 없이 나오는 다채로운 마법의 존재와 장치들은 세계의 신화와 문학을 요람으로 삼아 소비에트 사회를 하나하나 뒤엎고 있다.
소비에트 이상과 선전선동하고 노동영웅의 허상, 인문학적 상상력을 소거한 비정상성, 소비에트 관료주의와 속물근성, 언어층으로 구현된 소비에트 현실의 그로테스크함에 대한 비판과 풍자 혹은 성찰과 반성은 특히 이 작품의 제목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를 통해 극대화된다.
[…] 공휴일이 없는 세상, 일요일 없이 토요일에 월요일이 시작되고 일과 노동만 강조되는 세상, 그 어두운 세상은 소비에트 사회의 모든 삶과 현실을 압축해 놓은 환유적 풍경이자 소비에트 노동일주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스투르카추키 형제의 날카로운 풍자가 집중된 공간이다.
일요일 없이 토요일에 월요일이 시작되는 세상, 그것은 소비에트 현실에 대한 가장 압축적이고 놀라운 아홀리즘이며 그것이 바로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서 벌어진 <난리법석>의 실상을 통찰하게 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번역자의 말’로 만나 작중의 주요 무대인 ‘요술과 마술과학연구소’는 러시아어로 ‘군이차보’로 약칭되는데,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별것도 아니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단어와 비슷한 발음으로 신선한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소비에트 현실을 희화하는 작가들의 독보적인 언어 조탁 능력은 환상성과 풍자라는 고대부터 이어진 러시아 문학 전통의 지평을 확장하여 구성상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의 앞뒤를 덮고 있는 작자 불명의 머리말과 작중 인물들이 작성한 후기 및 용어 해설과 같은 메타픽션적 장치와 함께 정형화된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작품 전반에 일관된 문학적 시도와 호응한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는 1964년 소련에서 첫 등장한 뒤 현재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며 작가들의 작품 투표에서 늘 선두를 다툴 정도로 사랑받았다.
이는 4년간의 번역 작업에 매진한 번역자 이휘원 교수가 말한 대로 “모든 인간적인 것을 새로운 장르로 구현하는 것, 그것은 스투루카추키 형제가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수행하게 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 가까이 지난 2003년 독자와의 대화에서 동생 보리스 스톨가츠키가 귀띔한 바에 따르면 소설에 유일하게 나오지 않은 요일은 일요일이었다.
영국의 SF작가 아서 C 크라크는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련 SF작가 스톨가츠키 형제는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서 비록 동화나 전설에서 튀어나온 마법이라 하더라도 소련 과학자와 관료집단의 손에 들어간다면 소련다운, 그리고 매우 스톨가츠키한 난장판에 빠질 것임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세계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랄까.듀나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서 민담모티브는 현대의 소외된 과학과 사회를 어두운 피카레스크풍 흑·백마법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련하게 최신화되고 있다.
공상과학 백과사전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즐거움이다.
이 소설이란 사랑에 빠지는 이 소설이 상정했듯이 모든 방식의 체계화에 저항하는 것이 마법의 본질이다.
나는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를 인류의 신화와 모든 이야기 속에서 마법이 위치한 위치에 대한 탐색으로 읽고 싶다.
아담 로버츠 관료주의와 신령의 이런 융합은 고도의 재미를 주며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1960년대 러시아를 투영한 우스꽝스러운 논평. 스톨가츠키 형제는 러시아에서 영원히 가장 인기 있는 책이 될 천재적인 이야기를 엮었다.
긱스 오브 둠(대중문화웹진) 스톨가츠키 형제는 패러디 꿈 가상세계로의 여행 철학적 논쟁 등장인물과 분신의 기이한 행동 등 놀라울 정도로 복합적인 문학기법을 사용한다.
바이런 린지, “우리 시대의 동화 스톨가츠키 형제의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에 대하여” 익살과 재미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톨가츠키 형제의 이야기는 애정, 회의 혹은 공포와 같은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읽는 이를 삶과 예술의 경이에 대한 심원한 응시로 이끄는 지적 모험을 선사한다.
유진 카줄라우스키 스톨가츠키 형제의 소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되는 트로이카에 관한 이야기 속 코믹 코드 스톨가츠키 형제 중 한 명은 고골의 후손이고 다른 한 명은 체호프의 후손이지만 누가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애슐러 K 루균 역대 러시아 지식인들은 스톨가츠키 형제에서 배태했다.
그들의 책은 소비에트 사회나 실로 억압적인 모든 사회에 대한 정치 논평이라는 특별한 관점에서 읽힌다.
가디언 스톨가츠키 형제는 자신들이 공상적인 일의 사실주의자임을 증명한다.
공상소설에서의 사실주의가 논리적 귀결에 대한 존중, 오로지 가정된 전제로부터 모든 결론을 추론할 때의 성실함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스타니스와 프레임 강력하게, 아니 강박적일 정도로 논리적(길고 복잡한, 카프카적 논리)이다.
관료주의의 이해 불가능한 의식은 대부분의 스톨가츠키 형제소설의 배경이 된다.
브라이언 W 올디스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세계문학의 필수적인 요소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스톨가츠키 형제는 다른 문학형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소비에트 인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장르를 이용한 작가다.
뉴욕타임스 러시아 SF가 영혼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스톨가츠키 형제를 거역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 SF 독자를 위한 멋진 필독서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내 실험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광장을 열 바퀴 돌았고,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터질 것 같았고, 성냥갑과 신문에서 주머니는 부풀어 모든 판매원과 점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일련의 결과를 얻었다.
5코페이카 동전으로 지불하면 동전은 호주머니로 돌아온다.
만약 5코페이카 동전을 단순히 던지거나 분실했다면 동전은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5코페이카 코인은 판매원의 손에서 구매자의 손에 거스름돈이 들어오는 그 순간 호주머니로 돌아온다.
만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면 5코페이카 동전은 다른 주머니에 나타난다.
지퍼로 잠근 주머니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두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거스름돈을 팔꿈치로 손에 넣으면 5코페이카 동전은 몸 어디에나 나타난다.
내 경우에는 구두 속에 나타났다.
계산대 동전을 놓는 접시에서 5코페이카 동전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을 목격하는 데는 실패했다.
5코페이카 동전은 온갖 동전 사이로 바로 들어갔고 5코페이카 동전이 호주머니로 옮겨오는 그 순간에도 동전 접시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지불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거역하지 않는 5코페이카 코인 사건이 있게 됐다.
거역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은 무엇보다 물질적 실체의 초공간적 전위 가능성에 의해 자극받았다.
판매원에서 구매자로의 5코페이카 코인의 비밀 이동은 나에게 완전히 명확했다.
그것은 과학환상소설이나 판타지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다름 아닌 초이동, 비정형 도약, 타란토가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제로 운송의 개별적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 발견 전망은 눈부셨다.
93~94쪽 ‘제1화 ‘소파를 둘러싼 난리’ 제4장’에서 […]소파에 대한 동화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하늘을 나는 카펫은 있었다.
식탁을 자연스럽게 차리는 식탁보도 있었다.
투명인간-모자도 있고 천리를 보내는 장화도 있고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구스리도 있었다.
마법거울도 있었다.
그러나 기적의 소파는 없었다.
앉거나 누울 뿐 소파는 그저 평범한 법인데.… 도대체 어떤 환상이 소파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110쪽, ‘제1화 ‘소파를 둘러싼 난리’·제5장’에서 […]”자, 프리바로프” 마침내 그가 말을 시작했다.
“오늘 당신이 당직이네요. 명절 동안 기관의 당직은 매우 책임감 있는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절대 누르면 안 되는 버튼입니다.
먼저 화재경보기. 이게 첫 번째예요. 자연 발화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담당하는 생산시설의 전류가 차단되었는지 잘 주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양분하거나 교란하는 마술은 사용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복제나 분신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화재 요인이 감지되면 지체 없이 01번으로 전화하여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십시오. 그럴 경우에 대비해 비상용 팀 호출 경보용 호루라…” 그는 나에게 품목 번호 리스트와 함께 백금 호루라기를 건넸다.
“그리고 절대 아무도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실험실 야간작업이 허가된 구성원 명단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절대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명절이니까. 그러니까 연구소 전체에 살아있는 영혼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거죠. 다른 영혼은 용서해도 되지만 살아있는 영혼은 절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악마와는 출입구에서 이야기하세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까? 살아있는 영혼은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되고, 다른 영혼은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절-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도망쳐서 달을 훔쳤어. 잘 알려진 절례는 심지어 영화까지 나왔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163~164쪽, ‘두 번째 이야기 ‘난리 중의 난리’ 1장에서 그때 여느 때처럼 수심이 가득하고 분노로 가득 찬 뚱뚱한 흑마법 학사 마그누스 표도로비치 레디킨이 열쇠를 가져왔다.
그는 300년 전에 투명인간 바지를 발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때부터 그는 계속해서 그 바지를 완성하고 또 완성해 갔다.
투명인간-바지는 처음에는 투명인간-칠부바지였는데, 그 다음은 투명인간-폭신폭신 바지였는데,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 투명인간-정장바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디킨은 차마 바지를 디버그할 수 없었다.
최근 흑마법 세미나에서 레디킨이 자신의 정례 보고서 ‘레디킨의 투명인간-바지의 몇 가지 새로운 특성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그에게 불운이 다가왔다.
개조한 모델을 선보이는 동안 바지 지퍼를 올리고 내리는 시스템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오작동했고 바지는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발명가를 보이지 않게 하는 대신 바지 자체만 보이지 않게 해버렸다.
매우 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그누스 대로에 비치는 거의 줄곧 ‘완전히 표상되지 않는 인간 행복에 대한 시그마적 임의 기능의 근거로서의 물질화와 ‘백색 이론’의 선형 귀화’라는 논문 작업을 하고 있었다.
186188쪽, 제2화 난리 중의 난리 1장에서 절대 지식 부서가 위치한 곳에는 모든 환기창이 열려 있었다.
[…] 정말 여기는 이상한 부서였어. 부서의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영원에 대한 인식은 영원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 그 의견에 나는 반대하지 않지만, 이 구호에서 부서는 뜻밖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래서 일을 하든 일을 안 하든 마찬가지다.
” 이들은 우주 엔트로피 증가의 불가역 과정에 대해서는 작업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 대다수가 그랬다.
암마스 비베가로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들 작업의 과제는 상대적 인식이 절대적 진리에 근접해 가는 영역에서 상대적 인식 왜곡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서원 중 한 부류는 항상 데스크톱 메르세데스에서 0을 0으로 나누는 작업에 전념했고, 또 다른 부서원 부류는 무한대로 출장을 요청했었다.
출장을 다녀올 때는 이들은 포식해 활기찼고, 그리고 곧바로 건강 상태를 핑계로 다시 휴가를 얻기도 했다.
출장 가기 전 틈날 때마다 이들은 부서 저 부서를 돌며 작업대 위에 주저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로피탈 정리의 부정적인 극한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했다.
쉴 새 없이 수염을 깎고 상처받은 귀와 공허한 시선을 한 이 부서원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연구소에서 보낸 반년 동안 그들은 단 하나의 작업만 ‘알단’에 의뢰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로 0을 0으로 나누는 작업이었고, 어떤 절대 진리의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아마 그들 중 누군가가 진리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224~226쪽 ‘두 번째 이야기 ‘난리 중의 난리’ 제2장’에서 […]마법사, 위인, 그들의 좌우명은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였다.
그렇다.
그들은 비밀 주문을 알고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들 각각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맥병 다섯 개로 수천 명이서 쉽게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마법사가 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이유였다.
그들이 마법사가 된 것은 매우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지식의 양이 너무 많아 마침내 질적 전환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세계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소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심지어 행복은 무엇이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이란 미지의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에 있는 것이며 삶의 의미도 그와 같다는 학문적 가설을 채택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영혼 속에서는 마법사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마법사가 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때이며 오래된 의미의 오락을 즐기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즐거운 때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업무 전제는 진리와 멀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동이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부재는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인간을 원숭이로 바꾸기 때문이다.
어쩌면 원숭이보다 훨씬 떨어지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252253쪽, 제2화 난리 중의 난리 3장에서 사실 가장 흥미롭고 세련된 과학적 결과는 언제나 뭔가 초이성적이거나 막연하고 모호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과학과 동떨어진 사람들은 오늘날 과학에서 오로지 기적만을 기대하고 실제로 진정한 과학적 기적을 속이거나 정보과학의 어떤 지적 산물과 구별할 수도 없다.
마술과학과 마법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저명한 유령 학술회의를 개최하거나 시선만으로 0.5m 두께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는 일은 많은 사람이 생길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야말로 과학이 어느 단계까지, 그리고 얼마나 동화와 현실의 개념을 혼합하고 결합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존경스러운 대중에게는 경탄을 줄 일이다.
이제 벽을 관통하는 시선의 특징과 ‘콘크리트’라는 단어의 언어학적 특성 사이의 심원한 내적 연관성을 찾으려 시도하라!
아니면 ‘아우엘스의 위대한 문제’라는 명칭으로 유명한 문제의 세부 사항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라!
이 문제는 오이라 오일라가 환상적인 일반 이론을 창조해 수학적 마술 영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의 토대를 마련해 해결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이라오일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신 비베가로 교수는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니이짜보에서 일한다면서요?” 거기서
내 실험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광장을 열 바퀴 돌았고,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터질 것 같았고, 성냥갑과 신문에서 주머니는 부풀어 모든 판매원과 점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일련의 결과를 얻었다.
5코페이카 동전으로 지불하면 동전은 호주머니로 돌아온다.
만약 5코페이카 동전을 단순히 던지거나 분실했다면 동전은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5코페이카 코인은 판매원의 손에서 구매자의 손에 거스름돈이 들어오는 그 순간 호주머니로 돌아온다.
만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면 5코페이카 동전은 다른 주머니에 나타난다.
지퍼로 잠근 주머니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두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거스름돈을 팔꿈치로 손에 넣으면 5코페이카 동전은 몸 어디에나 나타난다.
내 경우에는 구두 속에 나타났다.
계산대 동전을 놓는 접시에서 5코페이카 동전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을 목격하는 데는 실패했다.
5코페이카 동전은 온갖 동전 사이로 바로 들어갔고 5코페이카 동전이 호주머니로 옮겨오는 그 순간에도 동전 접시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지불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거역하지 않는 5코페이카 코인 사건이 있게 됐다.
거역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은 무엇보다 물질적 실체의 초공간적 전위 가능성에 의해 자극받았다.
판매원에서 구매자로의 5코페이카 코인의 비밀 이동은 나에게 완전히 명확했다.
그것은 과학환상소설이나 판타지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다름 아닌 초이동, 비정형 도약, 타란토가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제로 운송의 개별적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 발견 전망은 눈부셨다.
93~94쪽 ‘제1화 ‘소파를 둘러싼 난리’ 제4장’에서 […]소파에 대한 동화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하늘을 나는 카펫은 있었다.
식탁을 자연스럽게 차리는 식탁보도 있었다.
투명인간-모자도 있고 천리를 보내는 장화도 있고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구스리도 있었다.
마법거울도 있었다.
그러나 기적의 소파는 없었다.
앉거나 누울 뿐 소파는 그저 평범한 법인데.… 도대체 어떤 환상이 소파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110쪽, ‘제1화 ‘소파를 둘러싼 난리’·제5장’에서 […]”자, 프리바로프” 마침내 그가 말을 시작했다.
“오늘 당신이 당직이네요. 명절 동안 기관의 당직은 매우 책임감 있는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절대 누르면 안 되는 버튼입니다.
먼저 화재경보기. 이게 첫 번째예요. 자연 발화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담당하는 생산시설의 전류가 차단되었는지 잘 주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양분하거나 교란하는 마술은 사용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복제나 분신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화재 요인이 감지되면 지체 없이 01번으로 전화하여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십시오. 그럴 경우에 대비해 비상용 팀 호출 경보용 호루라…” 그는 나에게 품목 번호 리스트와 함께 백금 호루라기를 건넸다.
“그리고 절대 아무도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실험실 야간작업이 허가된 구성원 명단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절대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명절이니까. 그러니까 연구소 전체에 살아있는 영혼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거죠. 다른 영혼은 용서해도 되지만 살아있는 영혼은 절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악마와는 출입구에서 이야기하세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까? 살아있는 영혼은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되고, 다른 영혼은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절-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도망쳐서 달을 훔쳤어. 잘 알려진 절례는 심지어 영화까지 나왔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163~164쪽, ‘두 번째 이야기 ‘난리 중의 난리’ 1장에서 그때 여느 때처럼 수심이 가득하고 분노로 가득 찬 뚱뚱한 흑마법 학사 마그누스 표도로비치 레디킨이 열쇠를 가져왔다.
그는 300년 전에 투명인간 바지를 발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때부터 그는 계속해서 그 바지를 완성하고 또 완성해 갔다.
투명인간-바지는 처음에는 투명인간-칠부바지였는데, 그 다음은 투명인간-폭신폭신 바지였는데,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 투명인간-정장바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디킨은 차마 바지를 디버그할 수 없었다.
최근 흑마법 세미나에서 레디킨이 자신의 정례 보고서 ‘레디킨의 투명인간-바지의 몇 가지 새로운 특성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그에게 불운이 다가왔다.
개조한 모델을 선보이는 동안 바지 지퍼를 올리고 내리는 시스템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오작동했고 바지는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발명가를 보이지 않게 하는 대신 바지 자체만 보이지 않게 해버렸다.
매우 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그누스 대로에 비치는 거의 줄곧 ‘완전히 표상되지 않는 인간 행복에 대한 시그마적 임의 기능의 근거로서의 물질화와 ‘백색 이론’의 선형 귀화’라는 논문 작업을 하고 있었다.
186188쪽, 제2화 난리 중의 난리 1장에서 절대 지식 부서가 위치한 곳에는 모든 환기창이 열려 있었다.
[…] 정말 여기는 이상한 부서였어. 부서의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영원에 대한 인식은 영원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 그 의견에 나는 반대하지 않지만, 이 구호에서 부서는 뜻밖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래서 일을 하든 일을 안 하든 마찬가지다.
” 이들은 우주 엔트로피 증가의 불가역 과정에 대해서는 작업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 대다수가 그랬다.
암마스 비베가로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들 작업의 과제는 상대적 인식이 절대적 진리에 근접해 가는 영역에서 상대적 인식 왜곡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서원 중 한 부류는 항상 데스크톱 메르세데스에서 0을 0으로 나누는 작업에 전념했고, 또 다른 부서원 부류는 무한대로 출장을 요청했었다.
출장을 다녀올 때는 이들은 포식해 활기찼고, 그리고 곧바로 건강 상태를 핑계로 다시 휴가를 얻기도 했다.
출장 가기 전 틈날 때마다 이들은 부서 저 부서를 돌며 작업대 위에 주저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로피탈 정리의 부정적인 극한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했다.
쉴 새 없이 수염을 깎고 상처받은 귀와 공허한 시선을 한 이 부서원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연구소에서 보낸 반년 동안 그들은 단 하나의 작업만 ‘알단’에 의뢰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로 0을 0으로 나누는 작업이었고, 어떤 절대 진리의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아마 그들 중 누군가가 진리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224~226쪽 ‘두 번째 이야기 ‘난리 중의 난리’ 제2장’에서 […]마법사, 위인, 그들의 좌우명은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였다.
그렇다.
그들은 비밀 주문을 알고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들 각각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맥병 다섯 개로 수천 명이서 쉽게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마법사가 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이유였다.
그들이 마법사가 된 것은 매우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지식의 양이 너무 많아 마침내 질적 전환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세계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소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심지어 행복은 무엇이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이란 미지의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에 있는 것이며 삶의 의미도 그와 같다는 학문적 가설을 채택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영혼 속에서는 마법사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마법사가 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때이며 오래된 의미의 오락을 즐기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즐거운 때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업무 전제는 진리와 멀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동이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부재는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인간을 원숭이로 바꾸기 때문이다.
어쩌면 원숭이보다 훨씬 떨어지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252253쪽, 제2화 난리 중의 난리 3장에서 사실 가장 흥미롭고 세련된 과학적 결과는 언제나 뭔가 초이성적이거나 막연하고 모호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과학과 동떨어진 사람들은 오늘날 과학에서 오로지 기적만을 기대하고 실제로 진정한 과학적 기적을 속이거나 정보과학의 어떤 지적 산물과 구별할 수도 없다.
마술과학과 마법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저명한 유령 학술회의를 개최하거나 시선만으로 0.5m 두께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는 일은 많은 사람이 생길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야말로 과학이 어느 단계까지, 그리고 얼마나 동화와 현실의 개념을 혼합하고 결합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존경스러운 대중에게는 경탄을 줄 일이다.
이제 벽을 관통하는 시선의 특징과 ‘콘크리트’라는 단어의 언어학적 특성 사이의 심원한 내적 연관성을 찾으려 시도하라!
아니면 ‘아우엘스의 위대한 문제’라는 명칭으로 유명한 문제의 세부 사항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라!
이 문제는 오이라 오일라가 환상적인 일반 이론을 창조해 수학적 마술 영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의 토대를 마련해 해결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이라오일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신 비베가로 교수는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니이짜보에서 일한다면서요?” 거기서
(왼쪽)동생 보리스·(오른쪽)형 가 루카디스톨가츠키ー 형제 ааа(р 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 알카디·나타ー노우이치·스투루 거츠 키(1925.8. 바투미~1991.10.12. 모스크바)보리스·나타ー노우이치·스투루 거츠 키(1933.4.15. 레닌 그라드~2012.11.19. 상트 페테르부르크)”사고하는 것은 여흥이 아니라 의무다!
”20세기의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형제 작가. 러시아 문학의 비판적인 추세와 풍자 문학의 전통을 SF에 결합시킨 독특한 반 소련적 디스토피아 작품을 남겼다.
그들의 작품 세계는 “정신의 모험”을 다루면서 실존의 본질에 천착한 실험적 공간이었다.
형제는 어린 시절 책만큼은 잘 누리며 자랐다.
서재에는 헤르트·조지·웰스, 미하일·에후그라포우이치·살티코후시에도링, 효도루·미하이로우이치·도스토옙스키, 안톤·파브로우이치·체호프, 잭·런던 등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책장을 공유했지만, 취향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형제 모두 소설을 쓸 것이 있었지만, 의기투합해서 소설을 써까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형의 알카디는 군사 언어 학교의 일본어 학부에서 수학하고 후일 나쓰메 소세키와 아베 코보 등을 번역해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동생의 보리스는 레닌 그라드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뒤 풀 코스 천체 관측소에 근무한다.
형제는 1950년대부터 소설적 발상을 나누면서 힘을 합쳐서 쓴 최초의 작품은 『 외부 』에서 1958년 잡지 『 기술-청년들 』에 발표됐다.
이듬해 1959년에 첫 단행본 『 선홍색의 구름의 나라 』이 출판된 이후 『 신이 되기 어렵다 』(1964)『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 』(1964)등의 대표작을 내며 전성기를 맞았다.
젊은 시절 형제는 소련의 이념에 긍정적인 공산 주의자였다.
그러나 점차 혁명과 소련 체제에 의문을 가지고 1968년에 “프라하의 봄”을 목격하고 소련 이념에 대한 환상을 잃는다.
그 무렵의 작품은 검열과 비평가의 혹평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 굴복해서 작문을 중단하기를 패배라 생각한 그들은 의도적으로 중립적으로 비정치적인 작품을 썼는데 그나마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가져온 도덕성 및 인간성 상실, 역사 앞에서 개인의 책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고 후기로 갈수록 소비에트 관료제 고발,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함께 통제와 감시에서 시달리는 인간의 위기 의식을 다양하게 제기했다.
스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큰 호응을 얻었다.
노변의 피크닉(1972)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의해 영화 잠입자(1979)로 만들어졌다.
알렉산드르 소클로프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1976)을 바탕으로 영화 일식의 날(1988)을 촬영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형제의 작품은 33개국 42개 언어로 번역돼 있다.
번역자가 이희원 한국외국어대 노어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 학위를, 미국 미들베리 칼리지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아르세니에프의 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