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0
”
복음
16:19-31
23 부자는 지하 세계에서 슬픔에 눈을 들어,
”
’
’ 대답하자
“아닙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
’”
오늘의 명상
복음서에서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히 직함만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복음서에 언급된 이름 자체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로 자주 언급됩니다.
Lazarus는 Eleazar의 약자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복음서의 두 인물은 나사로와 “어떤 부자”입니다.
비유에서 아브라함과 어떤 부자는 서로 직접 이야기하지만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고 나사로만 언급됩니다.
“나사로”라는 이름 자체가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냅니다.
비유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부자와 상처 투성이의 나사로의 묘사는 이 세상의 부와 가난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일은 다릅니다.
나사로는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부자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비유는 죽은 후에 모든 것이 현재 상황에서 역전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노라.” 나사로에게는 이 한 가지 소망밖에 없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죄는 나사로로 대표되는 그의 이웃에 대한 그의 무관심인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는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신자로 사는 올바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허규 베네딕트 신부)